
지난 8월, 한국과 일본의 돌봄 연구자, 활동가, 당사자들이 영케어러와 돌봄을 주제로 총 4일간(2025.08.20.~23) 만났습니다. 리츠메이칸 대학의 사이토 마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 케어필(CAREFIL)과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의 구성원들이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중앙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민간 재단, 청소년쉼터 등 현장을 방문했고, 함께 한일돌봄포럼과 돌봄연구자 네트워킹 파티도 추진했습니다. 오랫동안 한일 시민사회 교류의 촉진자 역할을 해오신 강내영 교수의 연결과 통역으로 원활한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케어필이 한국에 방문한 건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 현황 탐구를 시작으로, 모든 케어러를 위한 안전망을 구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돌봄 문제는 가족주의적 복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선-가족, 후-국가’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며 돌봄과 부양의 책임을 여전히 가족에게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주의적 복지를 벗어나 실질적인 케어러 지원을 구상하기 위해 케어필은 올해 한국, 내년 대만까지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한일 영케어러 지원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건 네트워크 구축의 첫걸음이었습니다.
한국 영케어러 지원: ‘현금성 지원’과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기준’ 마련 집중
4일간 교류에서 우리는 한일 영케어러 지원의 차이점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에게는 한국의 현금성 지원이 유독 눈에 뛰었습니다. 일본에는 영케어러만을 위한 현금성 지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은 현금성 지원이 중심이 됐습니다. 서울시복지재단 가족돌봄청년팀은 150만원에서 500만원 상당의 생계나 의료, 교육비 지원을 연계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비용 연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월 25만원 ‘가족돌봄청년수당’을 지급했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돌봄아동에게 약 150만원의 현금을 제공했습니다.
그 외에도 정서 지원, 돌봄 지원, 돌봄 역량 교육, 인식 개선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도 소개했지만, 현금성 지원이 쟁점이 됐습니다. 현금성 지원은 많은 양의 자원을 필요로 하고, 필연적으로 소득 기준과 돌봄 유무를 통한 선별 과정을 동반합니다.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마쓰다 료조 교수는 한국의 지원 기관들을 탐방한 후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현금성 지원이 돌봄 부담을 얼마나 완화해 주는지, 더 돌보도록 권장하는 역효과는 없는지, 선별하는 객관적 기준에 포함하지 못하는 사례는 없는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영케어러 지원이 오히려 가족 책임을 더 강화하지 않아야 하고, 객관적 기준에 빠지는 사례들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질문들이었습니다.
객관적 기준에 대한 고민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을 방문했을 때도 이어졌습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장기요양, 장애, 중증질환 산정특례자, 고령자 수급가정 등 그 외 다양한 사회보장 데이터로 영케어러 발굴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복지 현장에서는 데이터나 AI를 활용하지 않기에 일본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 기관이었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은 데이터의 활용이 사각지대를 제대로 해소할지, 혹은 사각지대를 더 만들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데이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돌봄 유형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분명 데이터 활용은 장단점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데이터로 확인한 내용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사각지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반대로 데이터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본다면 사각지대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탐방과 교류는 빠르게 변하는 한국 복지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본 영케어러 지원: 정신건강과 사회적 고립 등 ‘주관적 어려움’ 집중
일본 영케어러 지원의 특징은 객관적 기준보다 주관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영케어러는 정신건강 악화와 사회관계망 약화로 아동•청소년기에는 등교 거부, 퇴학, 방임, 교유관계 형성의 어려움이 생기고, 청년기에는 주거나 생활 독립의 곤란함, 대학 진학이나 취업 단념, 우울이나 자살 문제 등의 문제를 겪습니다. 일본의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은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생겨난 이유는 양국이 영케어러 지원을 논의한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은 ‘청년정책’으로 시작했습니다. 돌봄으로 인해 성인이행기, 즉 학업, 대학진학, 취창업, 결혼 등에 불이익을 겪는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청년기에 돌봄 문제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될 경우 생애 전반이 빈곤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막고자 예방적 차원에서 청년기에 개입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영케어러 지원의 시작이었습니다. 돌봄청년을 시작으로 현재는 돌봄아동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아동정책’으로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18세 미만의 아동이 ‘원래 성인이 담당해야 할 것으로 예정되는 가사나 가족 돌봄 등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학대’로 규정했습니다. 학대라는 정의 아래 경제적 빈곤보다는 주관적 어려움, 즉 심리정서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18세 미만의 아동케어러 지원을 시작해 현재는 30대 청년케어러(Young adult carer)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23년 4월 아동기본법 시행으로 아동가정청이 발족했고, 이곳이 영케어러 지원을 담당합니다. 2025년 아동가정청의 영케어러 지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영케어러를 파악하고 발견하는 코디네이터 확충, ②민간단체 등에서 당사자와 지원자의 동료 지원 연계, ③지자체 직영 또는 민간단체 등이 SNS나 앱을 통한 온라인 살롱 개최, ④이주배경청소년의 통역 돌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통역 파견을 시행.
중고등학교 양호교사인 야마무리 카즈에는 돌봄연구자 네트워킹 파티에서 자신이 만든 ‘디지털 양호실’을 소개했습니다. 일본의 양호실은 한국의 양호실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본 청소년들은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놓기 위해 양호실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양호실은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지향합니다.
쿄토시 유스서비스협회 ‘오리오리오리의 집’ 스태프 마츠오카 에리나는 일본의 ‘이바쇼’(居場所)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이바쇼는 모두가 나답게 머물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 대한 감각을 뜻하며, 꼭 한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물리적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모두가 나답게 머무는 장소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과 빈곤 연관성, 당사자 참여를 보는 시각의 차이
한일돌봄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카메야마 유키는 오타니대학교 조교이자 연구자이면서 영케어러 당사자입니다. 그가 맡은 주제는 ‘돌봄과 빈곤의 연관성, 당사자 참여형 지원의 방향’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돌봄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곤란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돌봄 부담이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이제 막 제기되는 단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계비나 간병비, 의료비 등 돌봄 부담이 경제적 부담으로 가시화된 한국에서는 영케어러 지원 초기부터 돌봄과 빈곤의 연관성이 고려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과 어려움도 강조했습니다. 우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행정가나 연구자 측에서 듣기 편한 당사자가 우선되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당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 소비되거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을 나누었습니다.
일본에서 영케어러의 문제는 당사자가 아닌 지원가나 연구자가 먼저 제기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당사자가 먼저 존재를 드러내며 주목받았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에게 한국은 당사자 참여가 활발한 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차이처럼, 한국이 객관적 기준 마련을 중시한다면 당사자가 호소하는 주관적 어려움은 쉽게 배제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과 같이 주관적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할 때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큰 힘을 받을지 모릅니다. 당사자 참여는 당사자의 조직력이나 활동력도 중요하지만, 지원 목적과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목소리의 힘이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차이 외에도 한국의 지원은 대부분 행정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일본의 지원은 민간의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도 큰 차이였습니다. 한국은 중앙정부의 역할이 큰 반면, 일본은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점도 두드러졌습니다.
공통점1: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
상호 비교를 통해 제도 발전 맥락과 방향을 짚어봤다면, 공통된 문제의식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논의한 건 용어에 대한 협의였습니다. 한국은 제도 내에서 영케어러를 ‘가족돌봄청년’으로 번역해서 사용합니다. N인분이 당사자 및 종사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25.02.11.~23 진행)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 용어가 특정한 역할과 이미지, 부담감을 강화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대체 용어로 ‘영케어러’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이 높은 지지를 받았고, N인분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돌봄아동, 돌봄청년 등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일본은 제도 내에서 영케어러(ヤングケアラー)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케어필은 영케어러 용어가 아동기와 청년기의 다양한 삶의 맥락들을 영(Young)이란 말로 소거한다고 보았습니다. 대체 용어로 아동•청년 케어러(子ども・若者ケアラー)를 제안하며, 생애주기별 구체성을 부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이번 한일돌봄포럼에서는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영케어러도 결국 ‘케어러’이기에, 보편적인 케어러 지원에서 아동과 청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한 집단을 어떻게 호명하는지의 문제는 그 존재의 성원권을 어떤 방식으로 보장하는지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고정된 용어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더 포용적인 용어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지점을 발견하고, 모두를 위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양국의 용어에 대한 논의는 서로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공통점2: 돌봄을 서로 배우고 나누는 시민문화
사이토 마오 교수는 2022년 4월 쿄토에서 결성된 시민네트워크를 소개했습니다. 많은 돌봄을 수행하는 여성뿐 아니라, 영케어러, 남성케어러, 정신장애인, 치매인, 돌봄이 필요한 아동과 성인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입니다. 케어러 지원조례를 만드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케어러 운동은 다양한 돌봄 실태에 대한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며 ‘돌봄을 서로 배우고 나누는 시민문화의 창출’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2024년 11월 교토시 케어러 지원조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조례의 목적은 ‘돌봄은 사회의 존립을 위해 기본적인 조건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돌봄을 담당하는 케어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입니다. 사이토 마오 교수는 이를 두고 ‘생산성 중심의 돌봄소멸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돌봄이 가득한 사회(Caring Society)라는 케어필의 비전과도 맞닿는 실천이었습니다.
쿄토시 케어러 운동과 케어필의 비전은 N인분의 미션•비전과 공명합니다. N인분의 미션은 ‘돌봄해도 괜찮고, 돌보고 싶은 사회’이고, 비전은 ‘누구나 의존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돌봄안전망’입니다. 케어필과 N인분 모두 돌봄을 서비스나 상품으로 대체할 부담이나, 폭력이나 빈곤처럼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민이 돌봄 역량을 갖추고, 관계 속에서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음 교류를 상상하며
앞으로 3개월마다 온라인 포럼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각국의 새로운 영케어러 연구, 돌봄 연구, 지원 현황을 소개하고 토론할 예정입니다. 2026년에는 N인분이 일본 현장을 탐방하고, 케어필은 대만으로 향합니다. 동아시아 케어러 운동과 돌봄 네트워크를 상상합니다. 오는 12월 14일 일요일, 첫 온라인 포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난 8월, 한국과 일본의 돌봄 연구자, 활동가, 당사자들이 영케어러와 돌봄을 주제로 총 4일간(2025.08.20.~23) 만났습니다. 리츠메이칸 대학의 사이토 마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 케어필(CAREFIL)과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의 구성원들이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중앙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민간 재단, 청소년쉼터 등 현장을 방문했고, 함께 한일돌봄포럼과 돌봄연구자 네트워킹 파티도 추진했습니다. 오랫동안 한일 시민사회 교류의 촉진자 역할을 해오신 강내영 교수의 연결과 통역으로 원활한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케어필이 한국에 방문한 건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 현황 탐구를 시작으로, 모든 케어러를 위한 안전망을 구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돌봄 문제는 가족주의적 복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선-가족, 후-국가’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며 돌봄과 부양의 책임을 여전히 가족에게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주의적 복지를 벗어나 실질적인 케어러 지원을 구상하기 위해 케어필은 올해 한국, 내년 대만까지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한일 영케어러 지원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건 네트워크 구축의 첫걸음이었습니다.
한국 영케어러 지원: ‘현금성 지원’과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기준’ 마련 집중
4일간 교류에서 우리는 한일 영케어러 지원의 차이점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에게는 한국의 현금성 지원이 유독 눈에 뛰었습니다. 일본에는 영케어러만을 위한 현금성 지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은 현금성 지원이 중심이 됐습니다. 서울시복지재단 가족돌봄청년팀은 150만원에서 500만원 상당의 생계나 의료, 교육비 지원을 연계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비용 연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월 25만원 ‘가족돌봄청년수당’을 지급했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돌봄아동에게 약 150만원의 현금을 제공했습니다.
그 외에도 정서 지원, 돌봄 지원, 돌봄 역량 교육, 인식 개선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도 소개했지만, 현금성 지원이 쟁점이 됐습니다. 현금성 지원은 많은 양의 자원을 필요로 하고, 필연적으로 소득 기준과 돌봄 유무를 통한 선별 과정을 동반합니다.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마쓰다 료조 교수는 한국의 지원 기관들을 탐방한 후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현금성 지원이 돌봄 부담을 얼마나 완화해 주는지, 더 돌보도록 권장하는 역효과는 없는지, 선별하는 객관적 기준에 포함하지 못하는 사례는 없는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영케어러 지원이 오히려 가족 책임을 더 강화하지 않아야 하고, 객관적 기준에 빠지는 사례들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질문들이었습니다.
객관적 기준에 대한 고민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을 방문했을 때도 이어졌습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장기요양, 장애, 중증질환 산정특례자, 고령자 수급가정 등 그 외 다양한 사회보장 데이터로 영케어러 발굴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복지 현장에서는 데이터나 AI를 활용하지 않기에 일본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 기관이었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은 데이터의 활용이 사각지대를 제대로 해소할지, 혹은 사각지대를 더 만들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데이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돌봄 유형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분명 데이터 활용은 장단점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데이터로 확인한 내용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사각지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반대로 데이터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본다면 사각지대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탐방과 교류는 빠르게 변하는 한국 복지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본 영케어러 지원: 정신건강과 사회적 고립 등 ‘주관적 어려움’ 집중
일본 영케어러 지원의 특징은 객관적 기준보다 주관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영케어러는 정신건강 악화와 사회관계망 약화로 아동•청소년기에는 등교 거부, 퇴학, 방임, 교유관계 형성의 어려움이 생기고, 청년기에는 주거나 생활 독립의 곤란함, 대학 진학이나 취업 단념, 우울이나 자살 문제 등의 문제를 겪습니다. 일본의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은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생겨난 이유는 양국이 영케어러 지원을 논의한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은 ‘청년정책’으로 시작했습니다. 돌봄으로 인해 성인이행기, 즉 학업, 대학진학, 취창업, 결혼 등에 불이익을 겪는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청년기에 돌봄 문제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될 경우 생애 전반이 빈곤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막고자 예방적 차원에서 청년기에 개입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영케어러 지원의 시작이었습니다. 돌봄청년을 시작으로 현재는 돌봄아동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아동정책’으로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18세 미만의 아동이 ‘원래 성인이 담당해야 할 것으로 예정되는 가사나 가족 돌봄 등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학대’로 규정했습니다. 학대라는 정의 아래 경제적 빈곤보다는 주관적 어려움, 즉 심리정서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18세 미만의 아동케어러 지원을 시작해 현재는 30대 청년케어러(Young adult carer)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23년 4월 아동기본법 시행으로 아동가정청이 발족했고, 이곳이 영케어러 지원을 담당합니다. 2025년 아동가정청의 영케어러 지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영케어러를 파악하고 발견하는 코디네이터 확충, ②민간단체 등에서 당사자와 지원자의 동료 지원 연계, ③지자체 직영 또는 민간단체 등이 SNS나 앱을 통한 온라인 살롱 개최, ④이주배경청소년의 통역 돌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통역 파견을 시행.
중고등학교 양호교사인 야마무리 카즈에는 돌봄연구자 네트워킹 파티에서 자신이 만든 ‘디지털 양호실’을 소개했습니다. 일본의 양호실은 한국의 양호실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본 청소년들은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놓기 위해 양호실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양호실은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지향합니다.
쿄토시 유스서비스협회 ‘오리오리오리의 집’ 스태프 마츠오카 에리나는 일본의 ‘이바쇼’(居場所)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이바쇼는 모두가 나답게 머물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 대한 감각을 뜻하며, 꼭 한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물리적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모두가 나답게 머무는 장소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과 빈곤 연관성, 당사자 참여를 보는 시각의 차이
한일돌봄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카메야마 유키는 오타니대학교 조교이자 연구자이면서 영케어러 당사자입니다. 그가 맡은 주제는 ‘돌봄과 빈곤의 연관성, 당사자 참여형 지원의 방향’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돌봄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곤란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돌봄 부담이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이제 막 제기되는 단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계비나 간병비, 의료비 등 돌봄 부담이 경제적 부담으로 가시화된 한국에서는 영케어러 지원 초기부터 돌봄과 빈곤의 연관성이 고려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과 어려움도 강조했습니다. 우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행정가나 연구자 측에서 듣기 편한 당사자가 우선되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당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 소비되거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을 나누었습니다.
일본에서 영케어러의 문제는 당사자가 아닌 지원가나 연구자가 먼저 제기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당사자가 먼저 존재를 드러내며 주목받았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에게 한국은 당사자 참여가 활발한 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차이처럼, 한국이 객관적 기준 마련을 중시한다면 당사자가 호소하는 주관적 어려움은 쉽게 배제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과 같이 주관적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할 때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큰 힘을 받을지 모릅니다. 당사자 참여는 당사자의 조직력이나 활동력도 중요하지만, 지원 목적과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목소리의 힘이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차이 외에도 한국의 지원은 대부분 행정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일본의 지원은 민간의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도 큰 차이였습니다. 한국은 중앙정부의 역할이 큰 반면, 일본은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점도 두드러졌습니다.
공통점1: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
상호 비교를 통해 제도 발전 맥락과 방향을 짚어봤다면, 공통된 문제의식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논의한 건 용어에 대한 협의였습니다. 한국은 제도 내에서 영케어러를 ‘가족돌봄청년’으로 번역해서 사용합니다. N인분이 당사자 및 종사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25.02.11.~23 진행)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 용어가 특정한 역할과 이미지, 부담감을 강화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대체 용어로 ‘영케어러’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이 높은 지지를 받았고, N인분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돌봄아동, 돌봄청년 등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일본은 제도 내에서 영케어러(ヤングケアラー)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케어필은 영케어러 용어가 아동기와 청년기의 다양한 삶의 맥락들을 영(Young)이란 말로 소거한다고 보았습니다. 대체 용어로 아동•청년 케어러(子ども・若者ケアラー)를 제안하며, 생애주기별 구체성을 부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이번 한일돌봄포럼에서는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영케어러도 결국 ‘케어러’이기에, 보편적인 케어러 지원에서 아동과 청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한 집단을 어떻게 호명하는지의 문제는 그 존재의 성원권을 어떤 방식으로 보장하는지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고정된 용어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더 포용적인 용어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지점을 발견하고, 모두를 위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양국의 용어에 대한 논의는 서로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공통점2: 돌봄을 서로 배우고 나누는 시민문화
사이토 마오 교수는 2022년 4월 쿄토에서 결성된 시민네트워크를 소개했습니다. 많은 돌봄을 수행하는 여성뿐 아니라, 영케어러, 남성케어러, 정신장애인, 치매인, 돌봄이 필요한 아동과 성인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입니다. 케어러 지원조례를 만드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케어러 운동은 다양한 돌봄 실태에 대한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며 ‘돌봄을 서로 배우고 나누는 시민문화의 창출’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2024년 11월 교토시 케어러 지원조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조례의 목적은 ‘돌봄은 사회의 존립을 위해 기본적인 조건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돌봄을 담당하는 케어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입니다. 사이토 마오 교수는 이를 두고 ‘생산성 중심의 돌봄소멸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돌봄이 가득한 사회(Caring Society)라는 케어필의 비전과도 맞닿는 실천이었습니다.
쿄토시 케어러 운동과 케어필의 비전은 N인분의 미션•비전과 공명합니다. N인분의 미션은 ‘돌봄해도 괜찮고, 돌보고 싶은 사회’이고, 비전은 ‘누구나 의존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돌봄안전망’입니다. 케어필과 N인분 모두 돌봄을 서비스나 상품으로 대체할 부담이나, 폭력이나 빈곤처럼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민이 돌봄 역량을 갖추고, 관계 속에서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음 교류를 상상하며
앞으로 3개월마다 온라인 포럼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각국의 새로운 영케어러 연구, 돌봄 연구, 지원 현황을 소개하고 토론할 예정입니다. 2026년에는 N인분이 일본 현장을 탐방하고, 케어필은 대만으로 향합니다. 동아시아 케어러 운동과 돌봄 네트워크를 상상합니다. 오는 12월 14일 일요일, 첫 온라인 포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